목차

1. 개요
2. 역사
2.1. 개괄
3. 출처


1. 개요

미원-제일제당 사이에서 벌어진 조미료 시장경쟁의 통칭. 삼성전자-LG전자의 가전제품 경쟁, 요즘 롯데제과-해태제과-농심-오리온의 과자 전쟁에 버금가는 '세기의 대결'로 손꼽혔다.

2. 역사

2.1. 개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산 화학조미료 아지노모토가 한반도에서도 매우 각광을 받고 있었는데, 해방과 함께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조미료 공급이 수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여전히 많은 양의 아지노모토가 밀수입되거나 심지어 위조되고 있는 형편이었는데, 이 빈틈을 1956년에 출시된 미원이 장악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미원의 전성기가 진행되면서 '일미', '선미소', '미영', '닭표맛나니', '미풍' 등 온갖 아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미원은 결코 아류를 허용치 않았다. 이 중에서도 당시 삼성의 계열사인 제일제당 미풍의 도전은 거세었다. 1963년, '원형산업'을 인수하면서 아지노모토 기술제휴 하에 조미료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 둘의 경쟁은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진행되었다.

특히 1970년 1월 31일자부터 시작된 미원과 미풍의 파격적인 경품 광고 경쟁은 가장 인상이 깊었다. 미풍의 광고는 미풍 빈 봉지 다섯 장을 보내는 1만 명에게 선착순으로 3천원 짜리 여성용 스웨터를 경품으로 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3천 원은 당시 근로자 월급의 1/10쯤 되는 큰 돈이었다.

반면 미원의 광고는 한술 더 떴다. '새 포장 발매기념 사상 최대의 호화판 사은 대잔치'란 제목으로 15만 명에게 선착순으로 순금반지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풍의 광고 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미원이 급히 간부회의를 열어 주부들이 좋아할 만한 경품을 모색하다 결국 '금반지'를 채택했다고 한다. 당시 미원의 사원들은 광고 이후 밀려드는 미원 봉지를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이렇게 두 회사의 판촉 경쟁이 과열되자 결국 상공부치안국이 개입해 경품행사 중지를 요청하면서 결국 양사는 '사은잔치 중지' 성명서를 냄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럼에도 미원은 미풍과의 광고전쟁에서 승리한 그 때의 일을 자랑스레 여기고 있다.

또 하나의 예도 있다. 미풍 측은 '경품 전쟁'이 있기 전인 1969년 4월 3일에 일본의 이노신산 소다를 수입하겠다고 발표하고 광고 싸움을 하다 결국에는 법정 분쟁으로 번진 것이다. 미원이 새 조미료의 원료를 수입하는 건 외화를 낭비하고 국내 기술의 개발을 해친다고 하여 성명서와 신문광고를 내며 맞선 것이다. 3년 만에 끝난 싸움에서도 승리의 여신은 미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원에게 잇따라 지면서 미풍은 영원히 2등만 걸어갈 것 같았다. 그러던 1975년, 미풍을 밀던 제일제당은 대신 '천연조미료'란 기치를 내건 다시다[1]를 냈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결국 미원의 판세를 못 뒤집어 한때 다시다의 철수를 고려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1977년, 미풍의 후속작으로 국내 최초의 복합조미료 '아이미'를 내놨지만 같은 시기에 내놓은 '복합미원'에 밀려 맥을 못 추고[2] 1985년에 미풍으로 회귀한 뒤 1990년에 '맛깔미풍'으로 탈바꿈했다가 1993년에 단종되었으나 인터넷에서 구입 가능한 것으로 보아 원래 이름인 '아이미'로 재생산 중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미와 비슷한 복합 조미료인 2.5도 시장에서 참패.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복합조미료는 아이미, 순도 높은 MSG는 미풍으로 생산 중이며, 국내에서는 미풍, 아이미, 2.5 모두 업소용으로 유통되고 있다. 전부 인도네시아 현지공장 생산품.

그동안 미원에게 밀리던 제일제당에게도 기회가 왔다. 1980년대 초반에 화학조미료의 유해론이 일면서 상황이 역전되어 천연조미료 다시다의 판매가 늘었던 것이다. 그러자 미원은 늦게나마 1982년에 '맛나'로 대응해 다시다에 맞섰으며, 드라마 전원일기가 인기를 끌 당시 제일제당 측이 전속모델로 김혜자를 내세우자 미원 측은 1986년부터 며느리 역을 맡은 고두심을 내세웠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 복합조미료 측은 미원(대상)이, 종합조미료는 CJ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가, 1998년에 대상 창업주 임대홍의 손녀 임세령이 이재용 당시 삼성 상무와 결혼하면서 사실상 사돈 기업이 되어 대상-CJ의 조미료 전쟁은 사실상 막을 내리는 듯 했으나, 2009년에 임세령과 이재용은 이혼했다.

이 '조미료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제일제당의 모기업인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호암자전')에서 '세상에 내 마음대로 안되는게 골프, 자식, 그리고 미원'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성소로 대차게 망한 장선우의 실질적인 데뷔작인 성공시대(영화)가 이 조미료 전쟁에서 소재를 따온 영화이다.

3. 출처

  •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손성진 저. 추수밭. 2009. p234~237

[1] 이때부터 아지노모토식 감칠맛 베이스던 국내조미료 시장에서 소고기맛 조미료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2] 당시 아이미는 일본 큐피 마요네즈의 그것과 거의 흡사한 캐릭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사은품으로 그 인형을 내놓자 미원에서는 앞치마로 응수했다. 조미료를 구입하는 주부들이 사은품으로 어떤걸 더 선호했을지 생각해보면 마케팅에서 이미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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